홍보부스 스케치 | 지속가능발전목표, 누가, 어떻게 만든 것일까?
글 / 윤경효 SDGs시민넷 사무국장
유엔 SDGs 고위급 정치포럼(High Level Political Forum)의 홍보부스를 보려면, 유엔건물 지하 1층의 회의장 입구 쪽으로 가면 된다. 유엔 지하 회의장 복도를 따라 소박하게 차려진 홍보 테이블과 벽에 세운 배너들이 다다. 의사결정을 하기 위한 회의가 주목적인 공간에 홍보용 전시컨벤션이 있을 턱이 없잖은가....헐...
유엔환경프로그램(UNEP), 유엔개발프로그램(UNDP), 유엔해비타트(UN Habitat) 등 유엔 산하 기구들이 주관하는 회의나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 등 국제협약 회의의 경우, 각 회원국들이 행사를 유치하다 보니, 회의장 외에 자국 홍보를 위한 전시장과 프로그램이 함께 마련되는데, 고위급 정치포럼은 매년 금싸라기 땅 뉴욕 맨하탄 한복판에 위치한 유엔 건물에서 열리는 지라, 회원국들이 홍보전시할 필요성도, 공간도 없기 때문이 아닐까 추정해 본다.
유엔 회의장 지하 복도를 따라 10여개의 팀이 있는데, 대부분이 시민사회단체나 연구기관이고, 정부는 라오스 한 곳이었다.
글로벌 에코빌리지 네트워크 홍보테이블 ⓒ 윤경효
작년에 HLPF 회의장에서 글로벌 에코빌리지 네트워크의 활동가를 만났었는데, 올해 활동을 위한 사전답사였던 모양이다. 전시 복도에서 꽤 큰 규모로 ‘글로벌 에코 빌리지 네트워크’의 활동을 홍보하고 있었다. 올해 점검 목표가 환경과 도시인 점을 생각하면, ‘에코 빌리지’가 두 가지를 상징하는 가장 대표적인 실천 사례가 아닐까 싶다. 글로벌 에코빌리지 네트워크는 국내에 이미 소개되어 환경운동가들이나 마을만들기 관계자들이 교류를 하고 있어, 낯설지 않은데, 가장 아래의 현장을 하늘에 떠 있는 고위급 논의의 장으로 가져와 보여 주고 있다는 것이 인상적이다.
에코빌리지 그룹은 전시만 하고 사이드이벤트를 주관하지는 않았는데, 말로 떠들지 않고 오로지 실천으로만 보여주겠다라는 의도였다면, 테이블에 앉아 이행을 부르짖는 것에 점점 지쳐가고 있던 내게는 그 의도가 전달되었다. 200여개의 사이드이벤트가 열리기 때문에 보통 사이드이벤트 참가자들이 50명을 넘기가 쉽지 않은데, 복도 전시는 회의장을 오가는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으니, 최소한 풀뿌리 현장 활동이 전 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은 알릴 수 있고, 관심있는 사람들과의 네트워크도 가능할 터이다. 그들의 선택과 집중 메시지 전략이 나 말고 다른 참가자들, 특히, 정부와 유엔 관계자들에게도 전달되었기를...
스코틀랜드 정부의 11개 지속가능발전목표 ⓒ 윤경효
올해 한국정부가 국가 지속가능발전목표(SDGs)를 수립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나라들은 어떻게 했는지에 유독 관심이 갔는데, 마침 영국 스코틀랜드와 라오스의 지속가능발전목표 내용을 볼 수 있었다. 스코틀랜드는 11개의 목표를 수립한 반면, 라오스는 지뢰와 미폭발물로 인한 안전사고 문제가 큰 사회문제인 것을 고려해 18번째 목표를 추가한 것이 흥미로웠다.
사실, 각 나라마다 정치‧사회‧경제‧환경 조건에 따라 다양하기 때문에 SDGs 내용보다는 그 목표를 수립하는 틀과 과정, 절차에 보다 관심이 많았는데, 대부분이 17개 유엔 SDGs를 기본 틀로 하고 있고, 전문가 중심의 연구 및 자문과 시민공청회를 통한 한 두 차례의 의견수렴을 통해 확정했다. 즉, SDGs를 수립하는 틀과 과정이 여전히 하향식으로 이루어졌다는 뜻이다. 포용, 참여, 통합 거버넌스를 주창하는 ‘SDGs’의 첫 단추가 과거처럼 하향식으로 진행되고, 시민들을 SDGs 내용을 주입시키는 대상으로 여기는 구조에 대해 대부분의 국가가 별 문제의식이 없다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누구도 배제하지 않고’, ‘경제‧사회‧환경’ 가치를 통합하기 위해서, 기존의 하향적이고 전문가 중심 정책 의사결정 구조와 과정을 전면 개편해야 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거나, 유엔 SDGs를 그저 형식적인 국제외교나 개발협력 프로그램 하나로만 일부러 가치절하고 있지 않은 이상, 이 상황이 설명이 안 된다.
SDGs시민넷은 2017년부터 정부에 국가 SDGs 수립을 요구함과 동시에 수립할 때부터 다양한 주체그룹의 참여구조와 기준, 절차를 마련할 것을 요청했다. 올해 정부가 국가 SDGs 수립을 추진하면서, 시민의견 수렴방식으로 SDGs시민넷이 제안한 ‘다양한 주체 참여 체계’를 적용하고 있는데, 진행과정이 녹록치가 않다. ‘다양한 주체그룹의 참여 체계’가 실질적으로 작동하려면, 먼저, 주요 주체그룹들과 시민들을 대상으로 SDGs에 대한 기본적인 교육이 이루어져야하고, 이들이 스스로 학습하고 조직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마련되어야 한다. 그런데, 9개월(2018.4~2018.12)이라는 짧은 수립기간에, 누가, 어떻게 우리나라 SDGs를 개발할 것인지 주체, 기준, 절차에 대한 로드맵이 명확하지 않은 가운데, 연구용역으로 진행되고 있어, 사실상, ‘다양한 주체 참여 체계’가 상향식의 의사결정과 공동 책임의 실천을 위한 거버넌스로서 작용하기 어렵고, 형식적인 의견수렴 과정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전문가 중심 자문위원회 구조의 한계를 보완하여, 개방적이고 포용적인데다 주체그룹별로 독립적인 입장문서를 제출하고 그 입장문서를 정부 홈페이지에 공식 게재해 참여의 투명성과 의사결정에 대한 책임성을 담보하는 ‘다양한 주체 참여 체계’를 지지하고 있는 많은 시민사회단체들과 이해그룹들이 현재 진행되고 있는 국가 SDGs 수립 절차와 과정에 대해 많이 우려하고 있는 상황이다.
7/16(월), 고위급 정치포럼에서 한국 정부는 한국과 국제시민사회, 그리고 유엔과 함께 ‘국가 SDGs 수립 과정에서의 다양한 주체그룹 참여 체계 도입’을 주제로 사이드 이벤트를 개최할 예정이다.
한국 정부가 국가 SDGs를 수립하는데 왜 ‘다양한 주체그룹 참여 체계’를 도입했고, 앞으로 어떻게 진행할 것인지에 대해 상반기 ‘다양한 주체그룹 참여 체계’ 운영 경험을 토대로 이야기 할 것이다. 또한, 유엔, 국제 시민사회, 한국 시민사회의 경험이 공유되어, 포용‧참여‧통합의 지속가능발전 거버넌스를 구축하는데 ‘다양한 주체그룹 참여 체계’가 실질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토론할 예정이다.
사실, 정부차원의 ‘다양한 주체그룹 참여 체계’는 새로운 정책 의사결정체계인 만큼 정부나 시민사회나 경험하지 않으면 말로는 쉽게 이해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래서 현재 대부분의 국가들이 지속가능발전위원회 등 SDGs 이행을 총괄하는 조직을 만들고 포용성, 대표성, 투명성을 조금 개선한 전통적인 정부위원회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에 의해 선택된 몇몇 개인 중심의 자문위원회라는 폐쇄성과 책임성 문제는 여전히 한계로 남는다. 현재, SDGs시민넷이 제안하고 있는 ‘다양한 주체그룹 참여 체계’는 전통적인 정부위원회 외에 그동안 비공식적으로 이루어져 왔던 다양한 이해그룹들의 정책제안 활동을 공식화하여 정책수립과정의 투명성과 이행의 책임성을 강화하고, 기관/단체 중심을 넘어 개인들도 참여할 수 있는 구조이며, 이러한 정책 의사결정 및 이행 시스템을 제도화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시민촛불혁명을 발판으로 들어선 정권인 만큼, 국민 참여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노력하고 있는데, 이번 국제회의를 통해 한국 정부가 다양한 주체그룹의 참여체계를 1회성 행사가 아닌, 보다 장기적인 지속가능발전 거버넌스 로드맵의 하나로 간주하고 재정비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그랬을 때, 비로소 21세기 지속가능발전을 선도하는 국가로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